아기의 뇌는 밤새 일하고 있다, 처음 마주한 생명의 순간에 읽어 본 책

임신 5주 6일. 오늘은 제게 조금 특별한 하루였어요.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봤거든요.
아직은 너무 작아서 점 하나처럼 보였지만, 그 작은 점이 제 안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어요.
처음에는 긴장되고 어쩐지 조금 두렵기도 했는데, 초음파 화면을 보자마자 안심이 되기 시작했어요.
초음파에도 보이지 않는 아주 이른 시점에 알아버린 바람에 2주를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에 떨었어요.
내가 불안하면 아기도 내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쁜 생각들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글들만 눈에 잘 보이더라고요..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초음파로 아기집이 보일 때에는 신랑도 울컥, 저도 울컥 하는 순간이었어요. 여전히 실감은 잘 나지 않았지만, 조금은 다르게 세상이 보였던 것 같아요.
매일 걷던 거리인데도 오늘은 마치 처음 보는 풍경처럼 낯설게 느껴졌어요.
'이제부터는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느끼는 것 하나하나가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페에 가서 평소라면 고민하지 않던 메뉴도 고민하고 디카페인으로 주문하게 되더라고요.

카페에 앉아 커피 한 모금 마시며 가방 속에서 꺼낸 책이 『아기의 뇌는 밤새 일하고 있다』였어요.
사실 임신 전에 이 책을 산 건 아니었어요.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야 갑자기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하지?', '지금 뭘 하면 좋을까?' 같은 생각들을 자연스레 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바랬던 일이었고 아직 초음파에 보이지도 않고 테스트기에 두 줄, 혈액 검사로 수치가 나왔을 뿐이었고 확실하지 않다고 기대 하지 말자, 했지만 내 온 몸의 변화들이 느껴졌거든요. 그런 와중에 이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밤새 일하는 아기의 뇌'라는 말이 어쩐지 기특하면서도 신비롭게 느껴졌어요.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며칠 됐지만, 오늘처럼 집중해서 읽은 건 처음이었어요.
초음파에서 본 작은 생명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들이 마음에 들어왔어요. 특히 아기의 뇌 발달은 엄마의 감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부분에서 한참 머물렀어요.
그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문득 오늘 병원에서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됐어요.
불안하고 어수선했던 감정들, 혹시 그게 아이에게도 전해지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다른 산모들이 진료실에서 나올 때도 저 혼자 울컥 울컥 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책은 그런 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주는 듯했어요.
괜찮다고, 모든 엄마가 처음에는 불안하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요.
책 속 문장들이 어찌나 따뜻하게 느껴지던지, 꼭 누군가 옆에서 조용히 다정하게 얘기해주는 기분이었어요. '엄마가 편안하면 아기도 편안해진다'는 문장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어요.
그 문장을 본 순간부터는 제 호흡도, 눈길도 조금은 부드러워졌어요. 그러고 보면, 임신이라는 경험은 단순히 생명을 품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 같아요.

그 전에는 내 감정을 분석하거나 다듬을 필요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달라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고, 조금 더 따뜻해지고 싶고, 어떤 날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도 싶고요.
그런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 모든 변화가 결국 나를 '엄마'라는 존재로 만들어가는 여정이 아닐까 싶어요.
책에서는 수면, 발달, 정서와 같은 실용적인 정보들도 꽤 많았어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건 '아이의 뇌는 부모와의 교감 속에서 자란다'는 문장이었어요.

이 교감이라는 게 거창한 말이 아니라는 것도 책 덕분에 알게 됐어요.
말을 걸어주고, 함께 숨 쉬고,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게 전달된다고 해요.
그 말을 읽고 나니, 오늘처럼 혼자 카페에 앉아 조용히 아기를 떠올리는 이 순간도 교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쯤 아기는 콩알크키 만하대요. 아직 초음파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지만 신경관이 형성되고 심장세포도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래요. 그렇게 생각하니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색다르게 느껴졌어요.

커피잔 옆에 조용히 놓인 책 한 권, 그리고 아직 아무런 감각은 없지만 분명히 제 안에 있는 그 존재.
이 두 가지가 마치 조용한 대화처럼 이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배 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고 마음속으로 말했어요. "오늘 봤어, 너. 작지만 분명히 있었어. 잘 자라고 있구나." 책 속에는 아이의 성장뿐 아니라 부모가 어떤 태도로 아이를 대할지에 대한 질문도 담겨 있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먼저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이 있다는 말이 특히 와 닿았어요.
지금 이 시기는 육아의 시작이 아니라, 엄마로서의 마음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시간이라는 걸 처음 실감했어요.

모든 게 처음이라 두렵지만, 그래도 이 과정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처럼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생각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쌓여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의 나도 참 애썼구나' 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지금의 제 작은 바람이에요.
책장을 덮고 나서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어요. 도리어 그 여운이 하루 종일 이어졌달까요.
그냥 정보만 담은 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기억에 남진 않았을 거예요.
『아기의 뇌는 밤새 일하고 있다』는 지금의 저처럼 막 엄마가 되어가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말들을 담고 있었어요.

다정하지만 솔직하게, 불안하지만 괜찮다고 말해주는 글들이요.
앞으로도 몸은 물론 마음도 더 많이 흔들릴 날이 오겠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오늘, 아기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작고도 확실한 생명의 징후였던 초음파, 그리고 마음을 다독여준 한 권의 책.
이 두 가지는 제 임신 초기를 기억하는 데 있어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남을 거예요.
그리고 그 장면은 제가 앞으로 엄마로 살아갈 시간에도, 종종 꺼내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